불출석을 예고했던 정유라(21)씨가 홀연히 법정에 등장했다.
변호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독자 행동이었다.
증인석에 선 정씨는 어머니 최순실씨와 삼성을 곤혹스럽게 하는 증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씨의 출석 경위를 두고 변호인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각각 공식 입장을 밝히며 장외 신경전을 벌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12일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재판에 정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삼성 측 변호인이 “불출석 사유서를 냈는데도 불구하고 법정에 나오게 된 경위가 무엇이냐”고 묻자 정씨는
“여러 만류가 있었고 나오기 싫었지만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답했다. 이날 정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약 4시간 동안 이뤄졌다.
정씨는 어머니 최씨가 “(삼성 말을) 네 것처럼 타면 된다. 굳이 돈 주고 살 필요 없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정씨가 말 ‘살시도’를 탔을 당시 성적이 좋지 않자 삼성이 다른 선수에게 살시도를 줄 것이 걱정돼
최씨에게 살시도를 직접 구입하자고 제안했더니 최씨가 이처럼 말했다는 것이다.
또 삼성 지시로 살시도의 이름을 바꿨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특검 측이 “어머니가 ‘삼성이 증인만 지원한다는 소문이 나면 시끄러워지기 때문에
삼성에서 시키는 대로 말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예”라고 답했다. 정씨는 말을 교환한 사실을 삼성 측이 몰랐을 리 없다는 주장도 했다.
“어머니가 ‘삼성에서 시끄럽다며 (말을) 바꾸라고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승마 코치인)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가 ‘삼성 니즈 투 페이(Samsung needs to pay)’라며
(말 차액에 대한) 돈이 안 들어온다고 짜증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승마 코치인) 크리스티안 캄플라데로부터 말 교환 전날 코펜하겐 공항에서 어머니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 3명이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최씨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을 하고 변호인 통제에서 벗어나는 등의
정씨 행보를 두고 최씨와 선긋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씨의 깜짝 출석에 당황한 변호인 측은 공식 입장을 내고
“검찰의 회유와 압박으로 이뤄진 출석과 진술”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씨는) 이날 오전 5시쯤 혼자 집을 나가 대기하던 특검팀 차량에 탄 뒤 종적을 감췄다”며
“21세의 여성 증인을 이런 방법을 동원해 증언대에 세운 행위는 위법적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검도 즉각 반박했다.
특검은 “정씨가 이른 아침 연락해 고민 끝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뜻을 밝혀오면서 법원 이동을 지원해 달라고 해 도와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14일 열리는 공판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의 경영승계 작업과 권력의 역할 등을 증언할 예정이다.
박영수 특검은 증언의 중요성을 감안해 당일 직접 법정에 나가 신문에 참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