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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없는 애플이 왜 FPCB 장비를 샀을까


애플은 지난달 인쇄회로기판(PCB) 장비 업체를 찾았다. 직접 장비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애플은 이 자리에서 수백억원 규모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공장이 없는 애플이 제조 설비를 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디스플레이 장비가 아닌 PCB 장비는 업계에서도 낯설다는 평가다. 애플이 갑작스레 장비 구매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애플은 구입한 장비를 현재 RFPCB를 공급 중인 협력사에 대여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상에 오른 기업은 두 곳으로, 이들은 실제 장비 입고를 준비 중이다. RFPCB는 단단한 '경성(Rigid)'과 구부러지는 '연성(Flexible)' PCB가 하나로 혼합된 것이다.

일반 제품보다 기술 수준이 높고 만들기가 까다로워 고부가가치로 분류된다. 애플이 장비 구매에 나선 건 당초 수급 계획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올 가을 출시 예정인 유기발광다이오드176(OLED) 아이폰 부품과 관련돼 있어 다급히 움직였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총 3개 업체에서 OLED 아이폰에 들어갈 터치스크린패널(TSP266)용 RFPCB를 공급 받으려 했다.

TSP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손가락 터치 입력을 가능케 하는 부품이다. 그런데 양산 직전 1개 업체가 대열에서 이탈했다. 복수의 PCB 업체 관계자는 “한 회사가 공급을 못하겠다고 제조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안다”며 “이에 애플이 물량 확보를 위해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전했다. RFPCB 공급 부족이 발생했고 물량 확보가 급해진 애플이 직접 장비 구매에 나서 다른 제조사 설비 증설을 지원했다는 설명이다.

제조를 포기한 업체는 대만 PCB 회사로 알려졌다. RFPCB 제조사는 중견이나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반면에 애플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RFPCB 제조사의 직접 증설은 부담이 큰 반면에 애플은 훨씬 덜하다.

오히려 아이폰 생산 차질이 애플로서는 더 큰 일이다. 애플은 또 곧바로 실행 가능한 가용 현금이 있기 때문에 증설 시간도 더 단축할 수 있다. 대만 업체의 사업 포기 이유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부품 업체 입장에서 애플은 초대형 고객사다.

그러나 지난해 소니도 애플에 듀얼카메라 공급을 추진하다가 철회한 적이 있다. 기술 난도, 제조 문제, 수익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만 업체의 사업 포기는 생산 준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작은 해프닝처럼 보이지만 업계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다. 특히 국내 FPCB 산업에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당장 올해만 1억대로 예상되는 애플의 RFPCB 물량을 업체 두 곳이 나눠 갖게 됐다.

수주 물량이 확대되기 때문에 당초 예상됐던 실적 이상의 결과가 기대된다. 수주 증가가 예상되는 두 업체는 모두 국내 기업이다. 여기에 애플은 RFPCB 공급사를 추가 선정하고 있다. 대만 회사가 빠진 빈자리를 채우는 작업이다.

신규 공급사는 연내 생산라인을 준비하고, 내년부터 공급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이름을 올리는 곳도 국내 업체다. 이 회사는 설비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PCB 업체 관계자는

“대만이나 중국 등 해외 FPCB 제조사는 양면이나 멀티 제품 생산에 집중해와 애플이 요구하는 RFPCB를 생산하는 데 적합한 설비가 없다”며

“반면에 한국 기업들은 RFPCB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 등 생산 인프라가 갖춰져 애플의 주문이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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