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현지시간) 허리케인 하비로 피해를 입은 텍사스주를 방문한 미국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는 '뾰족구두'를 신었다.
카키색 항공 재킷으로 멋을 부렸고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슬랙스를 착용했다.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검은색 선글래스를 썼고 스틸레토 힐을 신었다.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사상 최대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는 텍사스로 향하는 멜라니아 트럼프의 '홍수 패션'이었다. "한 켤레의 신발이 그 이상을 의미할 때가 있다." 발목이 부러질 듯 얇고 높은 굽의 '스틸레토 힐'을 신은 모습에 뉴욕타임스(NYT)는 이렇게 평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와 현실의 불협화음을 상징한다"며 "대통령 가족이 '적합성'의 범위를 그들 입맛대로 해석하는 또 다른 예시였다"고 덧붙였다. 영부인의 패션은 옷차림 그 이상을 의미할 때가 있다. 특히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방문할 때,
영부인의 옷차림은 피해자들을 향한 진심을 대변한다.
한국의 김정숙 여사는 어땠을까. 지난달 21일 최악의 물난리를 겪은 충북 청주 수해현장을 찾은 김정숙 여사는 긴 장화를 신었다.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일을 시작한 그는 빨랫감이 담긴 마대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무던하게 걸어다녔다.
영락없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이었다. 편안한 검은색 멜빵바지, 그 안에는 흰색과 검은색 줄무늬 셔츠를 입은 김정숙 여사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오전부터 충북 청주시에 있는 청석골 마을에 찾아간 김정숙 여사는 약 4시간가량 머물며 마을 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격려하고 함께 땀을 흘렸다.
당시 이 지역은 하천과 밀접해 폭우로 20가구 중 12가구가 침수됐고 농경지도 일부 유실됐다.
김 여사는 주민들과 젖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세탁물을 말리는 등 피해 복구에 구슬땀을 흘렸다.
수해 입은 이웃집을 돕다가 정작 자기 집 침수 피해를 막지 못한 주민을 찾아가
"예상치 못한 위기였는데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했다"며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손가락이 다쳐 밴드를 붙이고도 일을 이어갔다는 후문도 전해졌다. 청와대는 "김 여사가 준비해 간 수박과 음료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나누며
이웃의 어려움에 발 벗고 나서준 정에 고마워했다"고 전했다.
멜라니아의 홍수 패션에 연예·패션 전문 기고가인 마리아 델 루소는 트위터에 "멜라니아는 '홍수 구조대 바비' 같다"는 비판 글을 올렸다.
이어 TV 극작가 겸 제작자인 브래드 월랙은 "텍사스! 도움의 손길이 오고 있으니 걱정 마라. 멜라니아가 특수 태풍 스틸레토 힐을 갖고 있다"며 비꼬았다. 이런 비난을 의식한 듯 이날 첫 행선지인 텍사스 해안도시 코퍼스 크리스티에 도착한 멜라니아 여사는 항공 재킷을 벗어던지고 흰색 셔츠로 갈아입었다.
스틸레토 힐도 포기하고 흰색 운동화로 갈아 신은 모습이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도 깔끔하게 묶고는 볼캡을 착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멜라니아 여사의 검은색 모자가 주목받았다. 허리케인 하비 현장에 도착해 브리핑을 듣고 있는 멜라니아 여사는 'FLOTUS(미국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적힌 검은색 볼캡을 착용하고 있었다. 이에 "수해지역에 방문해서도 '퍼스트레이디'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텍사스 주지사의 브리핑을 들은 멜라니아 여사는 "말로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어 "텍사스를 둘러싼 주민들의 단합과 마음으로 걱정하는 이들의 진심에 큰 울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수해 패션 논란이 확산되자 멜라니아 여사 대변인 스테퍼니 그리셤은 "텍사스에서 자연재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신발에만 관심을 가져 안타깝다"는 내용의 성명을 이메일로 배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