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제동씨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 사회를 거부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씨가 이명박정부의 국정원 민간 사찰과 관련한 경험담을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김씨는 13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열린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총파업 결의대회에 초청을 받아
“(이명박정부 때) 국정원 직원을 집 근처 술집에서 만났다.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노제를 진행했으니 1주기 사회는 안 맡아도 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정원 직원은 자신을 VIP(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VIP가 내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면서 “그는 ‘제동씨도 방송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고 회유를 받은 사실도 폭로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설마 직보하는 사람일까’ 하고 생각했다. 이번에 확인된 문건을 보니 진짜였다”고 했다. 김씨의 주장은 이명박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또 하나의 증거로 활용될 수 있다.
검찰은 지난 12일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이 가수 양희은, 영화감독 여균동, 배우 이준기 등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계 퇴출을 압박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국정원에서 수사 의뢰가 추가로 들어오면 확대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나는 그때 촌놈이라 겁이 없었다. 그 직원에게 ‘(노 전 대통령 1주기 추모식에) 가지 말라고 해서 안 가면 당신이 나를 협박한 게 되기 때문에
당신에게도 안 좋다. 당신을 위해서라도 가겠다. 그래야 뒤탈이 없다'라고 말했다”며
“하지만 집에 들어가 무릎이 탁 풀리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하고 후회했다. 다음날 아침 공황장애까지 찾아왔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에게 사찰을 당한 정황증거도 제시했다. 그는 “국정원 직원을 겁낼 필요가 없다.
나를 만난 보고 문자를 상사에게 보내지 않고 나에게 잘못 보낸 적도 있다”며
‘18시30분 서래마을 김제동 만남’이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국정원 직원에게서 받은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국정원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 보냈다'고 알려줬다.
이런 사람들에게 국가 안보를 맡겨도 될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엄혹한 경험담을 털어놓으면서도 MBC 총파업 참가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할 목적으로 전문 진행자 특유의 유쾌한 표현들을 사용했다. 김씨의 발언 영상을 시청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이용자들은 웃음과 분노로 뒤섞인 복잡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출처의 영상을 게재한 유튜브 채널 아래에는 “김제동의 말솜씨에 웃으면서도 그 내용을 생각하면 화가 난다”
“개그맨보다 정부가 블랙코미디의 대가였던 시절”이라는 댓글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