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불법 차명계좌 1200여개가 삼성증권, 우리은행에 상당수 개설된 것으로 드러났다.
차명재산 4조4000억원을 이 계좌에서 몰래 빼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금융감독원은 2008년 ‘삼성 특검'에서 파악한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자료를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했다.
박 의원은 “이 회장의 차명재산에서 삼성생명, 삼성전자 차명주식은 삼성증권 차명계좌에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삼성 특검에서 드러난 이 회장 차명계좌는 총 1199개였다. 금감원은 그 중 1021개 계좌를 조사했다.
이 가운데 20개는 김영삼정부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1993년 이전에 개설됐고, 나머지 1001개가 그 이후에 만들어졌다. 차명계좌는 우리은행이 53개(83%)로 가장 많았다. 하나은행에 10개, 신한은행에 1개의 계좌가 존재했다. 증권 계좌는 더 많았다.
이 회장은 삼성증권에 756개(79%)의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신한증권 76개, 한국투자 65개, 대우증권 19개 , 한양증권 19개, 한화증권 16개, 하이증권6개 순이었다. 이 계좌들은 개설 당시와 거래 과정에서 본인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비실명 계좌다. 서류상 명의인과 실제 소유주가 다르다.
삼성은 특검을 마친 2008년 4월 “차명재산을 이 회장의 실명으로 전환하고 세금을 내겠다”며 사과했다.
이 회장 역시 “법적·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계좌들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삼성 특검 당시 차명계좌가 가상의 인물이 아닌 주민등록표상 명의로 개설된 계좌인 만큼 과세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금융위는 9년 만에 이 계좌들에 대한 유권해석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은 금융실명제 실시일인 1993년 8월 12일 이후의 비실명 자산에서 이자·배당 소득의 90% 세율로 과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이전의 비실명 자산에 대해서는 이자·배당 소득의 90%의 소득세를 차등 과세하고 금융실명제 실시일 당일 가액의 50%를 과징금으로 부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