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할 것도 없는 보이스피싱 전화였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그놈 목소리’는 “서울중앙지검 검사”라면서 “명의 도용으로 대포통장이 만들어져 은행계좌의 돈이 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돈을 보관해줄 테니 송금하라”는 것이었다. 이 전화를 받은 사람은 20대 여성이다. 그는 사기범이 알려준 계좌 4개로 돈을 부쳤다.
송금한 액수는 무려 8억원. 보이스피싱 범죄가 등장한 뒤 한 사람이 당한 역대 최고 금액이었다.
거액을 전화 한 통에 송금하면서 보이스피싱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이달 초 이 여성에게 피해 신고를 접수했다. 경위를 들어보니 수사기관이나 금감원 직원을 사칭하며 송금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수법에 당한 터였다.
그는 유사한 피해 사례가 많이 알려졌데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20대 젊은 나이에 현금을 8억원이나 갖고 있었다. 여성은 이 전화를 받고 사기범이 불러준 계좌 3곳에 모두 5억원을 나눠 보냈다. 사기범이 미리 만들어둔 대포통장이었다.
사기범은 이 돈을 곧바로 대포통장 명의의 가상통화 거래소 가상계좌로 재송금했다. 같은 날 여성은 사기범의 가상통화 가상계좌에 3억원을 추가 송금했다. 현재 가상통화 거래소는 회원명과 가상계좌로의 송금인명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거래가 제한된다.
사기범은 여성에게 송금인명을 거래소 회원명으로 변경해 송금할 것을 지시했고, 여성은 이를 그대로 따랐다.
사기범은 이렇게 들어온 8억원으로 가상통화를 구입한 후 자신의 전자지갑으로 옮겨 현금화했고 종적을 감췄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피해 여성의 충격이 매우 큰 상태로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려 한다"며
"직업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피해액 8억원은 투자에 따른 수익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흔한 수법이지만 젊은 사람도 그런 상황에서는 무방비가 되는 것 같다. 피해 구제를 받기는 상당히 어려운 처지"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젊은 여성을 표적으로 하는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송금 시 수취인 계좌에 최소 3시간 이후 입금되는 ‘지연이체서비스'를 적극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