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27일 오후 서울고법 312호 중법정. 피고인석에서 일어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감색 정장 상의 안주머니를 더듬어 종이를 꺼냈다.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최후 진술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저 이재용은 가장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좋은 부모 만나 좋은 환경에서 윤택하게 자랐고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이날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수뇌부 5명의 결심 공판을 진행했다.
이 부회장은 “재벌 3세로 태어났지만 제 실력과 노력으로 더 단단하고 강하고 가치 있게 삼성을 만들려 했다”며
“저 자신도 세계적 초일류기업의 리더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기업인으로 인정받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도와줘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도와주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말 억울하다”고 했다.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수차례 말을 더듬었지만 1심 결심 공판 때처럼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박 전 대통령과 모두 네 차례 독대를 했다는 의혹도 그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왜 그런 착각을 하시는지 모르겠다”고 부인했다. “제가 안가(安家)에 가서 박 전 대통령을 만난 건 두 번뿐입니다. 제가 그걸 기억 못하면 적절치 못한 표현이지만 제가 치매입니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청탁했다는 특검 주장도 부인하면서 함께 고발된 삼성 경영진의 선처를 부탁했다.
이 부회장은 “외아들이라 후계자를 놓고 경쟁할 거리도 없었다”며 “만일 저희가 어리석어 죄가 된다고 판단한다면
여기 묶여 있는 최지성 실장님과 장충기 사장님께는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주시고 그 벌을 저에게 다 엎어달라”고 요청했다. 박영수 특검은 이 부회장에게 1심과 같이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에 직접 출석한 박 특검은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해 만든 재단 등에 불법 지원한 행위를 사회공헌활동이라 주장하는 건
진정한 사회공헌에 대한 모독”이라며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범행을 깊이 반성하고 엄숙히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이 법정에서 사실관계를 다퉈볼 수 있는 사실심(1, 2심) 심리 절차는 이걸로 종결됐다. 항소심 선고는 내년 2월 5일 오후 2시에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