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마침내 ‘한반도 운전석’에 앉았다. 평창올림픽을 북핵 돌파구로 삼는 ‘평창 구상'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00% 지지”를 끌어냈다. 북한과는 2년간 단절됐던 대화 채널을 복원했다. 이제 남북 직접 대화가 시작된다.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한국이 주도권을 갖고 풀어야 한다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의 치킨게임을 지켜보며 한반도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북한은 쉼 없이 도발을 해댔고 미국은 엄포를 중단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군사옵션’과 ‘무조건 대화’ 사이에서 엇박자를 낼 때도 한국은 목소리를 들이밀 여지가 많지 않았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처지였다. 문재인정부는 한반도 정책의 기조를 수정하지 않았다. 응답 없는 북한을 향해서도 당국 간 회담과 적십자 회담을 제안했고 “압박도 결국 대화를 위한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자칫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과의 여러 차례 정상회담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중국과의 외교 역시 사드 문제를 비롯한 걸림돌을 치울 수 있었다. 남은 건 북한이었다. 김정은의 신년사는 북한에서 어떤 것도 더 큰 권위를 가질 수 없는 ‘지상 명령’과 같다. 귀순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 공사는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했으면 북한은 평창올림픽에 반드시 온다”고 했다. 그것이 전략이든 전술이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기정사실에 가까워졌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 평창 구상의 판을 벌릴 기회가 왔다. ◇ 트럼프 “미국은 문 대통령을 100% 지지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4일 전화통화를 하며 평창올림픽 기간 중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이 더 이상 도발하지 않을 경우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할 뜻을 밝혀주시면, 평창올림픽이 평화 올림픽이 되고 흥행에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문 대통령께서 저를 대신해 그렇게 말씀하셔도 될 것 같다. 평창올림픽 기간에 군사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셔도 되겠다”고 답했다. 30분간 진행된 두 정상의 통화는 미국 측 요청으로 이뤄졌다. 남북 대화 국면의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속도를 높이고 있는 대화 국면에서 한·미 균열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통화였다. 지난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사흘 만의 통화이기도 하다. 두 정상은 평창올림픽이 안전하고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대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할 것이며 우리는 남북 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과 북한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북 대화 성사를 평가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 대화 과정에서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알려 달라”며 “미국은 100% 문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올림픽 기간에 자신의 가족을 포함한 고위 대표단을 파견하겠다고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 앞서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회담은 좋은 것”이라면서 남북회담 개최를 환영했다. 그는 “실패한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확고하고 강하며, 또 강한 의지로 북한에 대해 우리의 모든 힘을 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남북 대화가 마련될 수 있었겠느냐”며 “바보들아, 하지만 회담은 좋은 것(Fools, but talks are a good thing!)”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의 남북대화 지지 선언… ‘절묘한 타이밍’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는 미국에서 남북대화를 향해 엇갈린 발언이 쏟아지던 상황에서 이뤄졌다. 판문점 연락채널이 가동되자 미국 언론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긍정적인 시그널로 환영하는 목소리와 함께 “한국이 북한의 덫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주장도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마침내 북한에 대한 희소식’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판문점 연락채널이 복원되고 남북대화가 재개되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 ‘논설위원단 일동’ 명의로 작성된 사설은 “북한이 단박에 핵무기를 포기하거나 그럴 가능성에 진지하게 동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그러나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으로 빠져들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규정했다. WP 사설은 “외교를 통해 긴장을 누그러뜨릴 수 있고 어쩌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동결이라는 중요한 잠정조치로 진전될 수도 있다”며 “그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남북대화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사설에서 “북한 핵 위기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제공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NYT는 “한국이 남북대화를 통해 군사훈련 중단이나 추가 제재 거부 등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런 위험부담을 무릅쓰고라도 대화는 할 가치가 있다”고 썼다. 반면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불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을 끌어들여 적극적으로 대화하려고 한다”며 “이런 상황은 미국 정부 대북정책의 본질적인 추진력에 상충된다”고 지적했다. 엘리어트 에이브람스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덫에 빠지게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다 보면 궁극적으로 한·미 군사관계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100% 지지” 선언은 한·미 균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최선의 카드였다. 전날만 해도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남북대화와 관련해 미온적 또는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다. “북핵 해결 없는 남북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남북대화에 지지를 표명하고 “대화에 우리(미국)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알려 달라”고까지 말함에 따라 이 같은 균열과 우려의 시각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 평창 구상 구현 위해 다각도 외교 조율 정부는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과도 접촉하며 남북 대화정국 전개에 대한 조율에 나섰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 청사에서 마크 내퍼 주한 미국대사대리, 브룩스 사령관을 만나 “남북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을 함께 추진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5일 서울에서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진행한다. 이 본부장은 앞서 조셉 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과 한반도 상황을 논의했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028123&code=61111211&sid1=pol&cp=nv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