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호(가명·7)군이 살고 있는 반지하방의 벽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다. 집안은 청소도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동생 2명의 건강까지 염려되는 환경이었다.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는 강군은 가정에서 따로 부모의 교육을 받고 있지도 않았다. 박세윤(가명·6)군은 어머니가 휴대용 가스버너로 지어준 밥을 먹고 지냈다. 도시가스는 요금을 내지 못해 끊긴 지 오래였다.
이혼한 아버지가 양육비를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어겼다. 생활고와 양육 부담을 피해 어머니마저 박군을 두고 집을 나갔다.
그제야 아버지가 박군을 데리러 왔지만 제대로 돌볼 형편이 안 됐다. 김현우(가명·8)군도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을 제대로 보살필 여유가 없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긴급 조치가 필요한 어린이 290명을 찾아냈다.
위기아동 조기 발견 1차 시범사업으로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3개월간 점검한 결과다.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거나 부모로부터 적절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참여한 읍·면·동 주민센터는 378곳이었다. 건강검진이나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동,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장기간 무단결석한 아동 등 3900여명을 일일이 찾아가 확인했다.
이 중 290명의 어린이가 정상 양육이 어려운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줬다. 강군의 경우 저소득층 어린이의 학습과 건강을 돌봐주는 드림스타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연결해줬다.
부모도 정신건강에 대한 점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박군과 김군은 보건소 진료와 예방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여성가족부에서 9개월간 양육비를 긴급 지원받을 수 있도록 안내도 해줬다. 김군 어머니에 대해선 보건소를 통해 정신과 진료도 받을 수 있게 했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3월 위기아동 조기발견 시스템을 전국에 확대 시행한다.
이 제도는 어린이가 사회적 관심에서 벗어난 사각지대에 방치되거나 학대받을 가능성을 줄이고 예방하는 데 의의가 있다.
신체적 학대만이 아니라 방임 등 정서적 학대와 열악한 생활환경도 점검한다. 아동 학대가 의심되는 사례가 있으면 주민센터 공무원이 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신고하고
상담원들이 현장에 나가 이웃 등 주변인 청취를 한다. 최종 학대 여부는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위기아동 조기발견 시스템은 당초 계획보다 한 달 빨리 시행되지만 인력 문제는 아직 숙제로 남아 있다.
만12세 미만 취약계층 아동은 복지부 소관이지만 그 이상은 여성가족부 소관이어서 부처 간 조율도 필요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검진 여부나 결석 여부 외에 위기아동 발굴에 도움이 될 지표를 추가하고,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쏠려 있는 위기아동 관리를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하도록 지원체계도 개선해 나갈 방침”이라며
“여가부 등 관계부처와 협업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학대를 예방하고 관리하는 국가적 수준의 인프라가 더 강화돼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아동권리 전담 부처가 상시적 방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전담하는 직원들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