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연출가 이윤택씨가 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이후 그가 창립한 극단 연희단거리패 내부에서 조직적인 은폐와 축소를 시도했다는 내부 고발자의 폭로가 나왔다. 극단의 고참 단원은 ‘내부 결속’을 강조하며 입막음을 시도했고 극단 대표와 이윤택씨는 기자회견을 앞두고 ‘불쌍한 표정’을 짓는 리허설을 했다.
2008년부터 연희단거리패에서 활동해온 연극 연출가 오동식씨는 21일 오전 페이스북에
“나는 나의 스승을 고발합니다. 그리고 선배를 공격하고 동료를 배신하고 후배들에게 등을 돌립니다”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는 이윤택씨 성폭력 파문과 관련한 연희단거리패 내부의 대응이 상세히 담겨 있다.
오씨에 따르면 연희단거리패는 지난 6일 최영미 시인이 jtbc에 출연해 문단 내부 성폭력을 고발하는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극단대표와 한 선배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한데...미리 연락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요.”
오씨에 따르면, 1년 전 오씨의 동기인 한 연극인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윤택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글을 썼고,
당시 연희단거리패 대표가 글 작성자를 만난 후 해당 글은 삭제됐다.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최영미 시인의 고발이 나오자 덩달아 이윤택씨에 대한 고발이 나오지 않을까 미리 걱정했다는 얘기다.
이윤택씨의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한 기사가 하나둘 나오자 연희단거리패 내부는 더욱 긴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12일 오후 한 언론사 기자가 극단대표에게 이윤택 기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문자를 보냈다.
“그날 오후 극단대표와 이윤택은 2시간 정도 단둘이 회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자에게 ‘우리는 입장을 밝힐 수 없다’라고 답장했답니다.”
이후 극단 수뇌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정황을 살펴보라”는 의견이 나왔고, 여러 단원들은 언론 보도와 SNS 여론을 지켜봤다.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의 폭로가 나온 뒤부터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씨는 서울 공연 중이던 연극 <수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극단은 “공연을 안 할 이유가 어디 있냐”며 기다리라고 했고,
기자들이 30스튜디오에 나타난 다음에야 공연 취소를 결정했다. 그러나 부산가마골 공연은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2월10일 부산가마골 극장에서 대책회의가 열렸다. 오씨에 따르면 당시 대책회의에서 ‘ㅈㅇㄱ’ 선배가 오씨에게 “본인의 입장을 밝히라고,
내부의 결속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씨는 “너무 놀랐다. 어떻게 나이는 같지만 후배에게 이런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치 이건 마피아나 조직폭력집단이나 하는 충성맹세 같은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고 싶었다”고 적었다.
오씨에 따르면 대책회의에서 피해자의 입장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오히려 연희단거리패 대표와 이윤택씨는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피해자를 공격하는 발언을 했다.
오씨가 이윤택씨의 성폭력 파문이 터진 상황에서 5월 서울연극제에 자신이 연출하기로 한 작품을 들고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자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우리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돼? 우리가 그렇게 잘못을 했어? 숨어 다녀야 될 정도로 잘못이야?
난 그 정도로 잘못한 거 없어!”라고 말했다. 오씨는 “이윤택은 고발자에 대해 모독과 모욕적인 언사를 해가며 우리를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했다”면서
“그리고는 앞으로의 공연 스케줄 논의를 시작했다.
자신이 연극을 당분간 나서서 할 수 없으니 앞에는 저와 같은 꼭두각시 연출을 세우고 간간히 뒤에서 봐주겠다면서”라고 적었다.
11일 또다른 폭로가 나오자 극단 단원들에게 다시 소집명령이 떨어졌다.
오씨에 따르면 당시 이윤택은 울산의 피신처로 이동했고 단원들은 새벽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당시 회의에서는 극단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오씨는 “(단원들 중 일부는) 마치 우리가 어떤 나쁜 세상과 맞서 싸우는 정의감까지도 드러내며 연극이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당시 심경을 적었다.
오씨에 따르면 전직 단원이 가명으로 이윤택씨로부터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고발하자 이씨는
“(이미 해결된 문제이니) 걱정 안 해도 된다”며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발언을 했다.
오씨는 이윤택씨가 기자회견을 앞두고 사전에 리허설을 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그에 따르면 이씨는 사과문을 완성한 뒤 기자회견 리허설을 하자면서 오씨에게 예상 질문을 하라고 했다.
오씨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이씨에게 ‘불쌍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선생님 표정이 불쌍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그러자 이윤택은 다시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오씨는 “그곳은 지옥의 아수라였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며
“선생님은 이제 내가 믿던 선생님이 아니었다. 괴물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어제까지 벌어진 일들을 후배들에게 먼저 고발했어야 한다.
하지만 난 그저 감상에 빠져 후배들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개새끼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