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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운 빵 먹으며 하루 18시간 ‘노역’… ‘현대판 노예’ 잠실야구장 가보니


지난 8일 긴급구조 조치된 서울 잠실운동장 청소노동자 이성호(가명·60)씨의 거처는 서울시 소유 부지의 쓰레기장이었다.

쓰레기더미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박스는 한눈에 봐도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녹이 슬고 칠이 벗겨진 철제 컨테이너 내부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현대판 노예’ 사건 피해자 이씨는 서울 한복판인 잠실운동장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17년여간 지냈지만 관리 주체인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씨가 지낸 곳은 잠실야구장 1번 매표소에서 불과 2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인부들이 쓰레기를 모아오면 고철 등을 나누는 분리수거장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근처에는 패스트푸드 등 음식점도 다수 있었다. 쓰레기장 주변은 목제 가림막이 설치돼 오가는 시민들은 내부를 잘 들여다보기 어려웠다. 쓰레기장에 들어서자 고철과 페트병이 쌓여 있었다. 고물상처럼 의자, 장롱 등 버려진 가구들이나 스티로폼, 폐자전거 등만 모아 놓은 곳도 있었다.

쓰레기로 가득 찬 포대 자루도 다수 발견됐다. 이씨가 하루 18시간씩 일하며 자고 지냈다는 컨테이너박스는 쓰레기장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내부에는 고물이 가득했고 쓰레기 냄새도 심하게 났다.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소파 위에는 색바랜 담요와 베개가 놓여 있었다.

난방 기구는 전기장판과 작은 온풍기가 전부였다. 변변한 옷가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래된 냉장고에는 얼린 밥 몇 덩이가 있었고, 쉰 김치 외에 먹을 만한 반찬은 없었다.

그는 사장이 가져다주는 걸 먹고 있다고 했다. 국민일보 기자가 그를 찾아갔을 때 “전날 운동장 근처에서 주웠다”며 빵을 먹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박스에는 곰팡이가 핀 빵이 여러 개 담겨 있었다. 이씨는 170㎝ 남짓한 키에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고 피부는 까맸다. 오랜 작업으로 손도 굽어 있었다.

먼지 가득한 국방색 점퍼는 곳곳이 해졌고 오랫동안 씻지 못한 듯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씨는 청소부들이 쓰레기봉투를 가져오면 페트병, 플라스틱 용기 등을 골라내 이를 마대에 분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페트병, 깡통캔만 모아 마대를 채운다”며 “자루를 다 만들어 한쪽에 옮겨놓으면 나중에 지게차가 와서 실어간다”고 했다.

그는 분리수거가 끝내면 리어카를 끌고 운동장 주변으로 파지를 모으러 다녔다. 잠실운동장에서 16년째 일했다는 한 청소노동자는 “제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씨가 일을 하고 있었다”며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내가 이곳에서 일한 지 10년이 되지 않았는데 그는 그 전부터 계속 이곳에서 분리수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청소노동자 대부분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다만 이들은 그가 컨테이너에서 사는지, 임금 문제가 어떻게 되는지 등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해당 분리수거장은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관리·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 관계자는 11일

“그들을 용역으로 고용한 적이 없다”며 “컨테이너박스에서 누군가 산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 소유 시설과 부지에서 17년가량 노동력 착취 행위가 발생했지만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한 관계자는 “이씨는 남루한 행색으로 매일 리어카를 끌고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위치한 잠실실내체육관을 오가며 파지를 주웠다”며

“체육시설관리소 측이 그의 존재를 몰랐을 리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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