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기억하는 날이다. 바로 ‘세월호 참사’. 오늘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000일 되는 날이다. 하지만 그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가 기대했던‘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정부와의 마찰로 인해 지난해 9월 공식활동을 마감했다. 1000일동안 그저 정치적 공방만 있었다. 이렇게 1000일이 흘렀다.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빠른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새해 첫 주말에도 서울과 전국 주요 도심에서 열렸다. 특히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이틀 앞두고 열린 집회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목소리가 드높았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은 7일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슬로건 아래 제11차 주말 촛불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60만명이 참가(경찰 추산 2만4000명)한 이날 광화문광장 집회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304명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경기 안산 단원고 출신 학생 9명도 참여했다. 대표로 마이크를 잡은 장예진(20·여)씨는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한다”며 “직접 구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지나쳤다. 친구들은 ‘가만히 있으라 해서’ (탈출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며 당시 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지적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 등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실종자인 단원고 허다윤 학생의 아버지 허흥환(54)씨는 “반드시 세월호를 온전하게 인양해야 한다”며 “시신 미수습자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국민이 도와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시민들은 종이컵 대신 세월호를 상징하는 종이배에 촛불을 꽂거나 노란색 종이배를 머리에 붙여 추모 분위기에 동참했다. 오후 7시쯤 일제히 촛불을 껐다가 켜자 1000개의 노란 풍선이 날아올랐다. 이어 희생 학생들의 영정을 든 유가족을 선두로 시위행렬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오후 10시30분쯤에는 경복궁 앞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서 승려 서모(64·법명 정원)씨가 ‘내란 사범 박근혜를 체포하라’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했다. 서씨는 전신 70%에 3도 화상을 입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태다. 그는 지난해 1월 외교부 청사에 화염병을 던지려다 붙잡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광주와 부산, 대구, 울산 등에서도 수만명이 모여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박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을 들었다. 친박 성향 보수단체는 대규모 집회로 맞섰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중심의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는 자체 추산 120만명(경찰 추산 3만7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을 압박하는 제8차 태극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탄핵반대’ 등의 피켓과 태극기를 들고 특검 사무실이 위치한 인근 대치동을 거쳐 강남역으로 행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