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7시간’ 행적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석명 명령에 응해 자료를 냈지만, 앞뒤가 안 맞는 부실자료로 드러나 헌재가 질책하고 보완을 요구했다. 대리인단은 자료에서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의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고 주장했다.
10일 박 대통령 대리인단은 박 대통령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자료를 헌재에 제출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자료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고 여러 대목에서 결함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 머물면서 오전 10시 국가안보실로부터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첫 보고를 받았다고 자료에서 밝혔다. 하지만 119 첫 신고가 오전 8시52분이고, YTN의 긴급속보가 오전 9시19분에 나왔다는 점에 비춰보면 상당히 늦게 사고 발생을 인지한 것이다. 관저에 있었던 이유에 대해 대리인단은 “공식 일정이 없고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오전 10시15분과 22분에 박 대통령이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전화해 “철저히 구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돼 있지만, 박 대통령이 이후 상황을 계속 확인했는지는 알 수 없다. 김 실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오전 10시15분쯤 박 대통령에게 “YTN을 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밝혔는데, 박 대통령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이날 “관저 집무실엔 TV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참사 당일) TV를 보지 않은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전 국민이 TV 속보를 쳐다보던 그때 박 대통령은 TV도 없는 관저에서 어떻게 세월호 상황을 체크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자료를 모두 믿더라도 오전 10시30분부터 낮 12시50분까지 2시간20분 동안의 행적은 여전히 묘연하다. 해경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특공대 투입을 지시하고,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기초연금법 관련 통화를 했다는 사이다. 이 시간에 박 대통령의 행적으로 기록된 것은 보고를 받은 것뿐이다. 오전 11시23분 등 7차례에 걸쳐 김 실장에게 유선보고를 받았다고 했지만 통화 기록은 증거로 제시하지 않았다. 낮 12시50분 최 수석과의 통화는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르다.
행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문서보고도 별다른 의미가 없다. 박 대통령은 안보실에서 보고한 문건을 헌재에 제출했다. 오전 10시, 10시40분, 11시로 시간이 표시돼 있다. 하지만 문건들은 A4용지 1쪽으로 1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이다. 서면보고를 읽기는 했는지, 읽었다면 이후 무얼 했는지, 무슨 일을 하다 읽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박 대통령 측은 “대통령의 일상은 출퇴근 개념이 아닌 24시간 재택근무 체제”라며 관저도 ‘집무실’이라고 주장했다. 대리인단은 “관계기관의 잘못된 보고와 언론의 오보가 겹쳐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며 언론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이와 함께 답변서 앞부분에서는 “당일 오전 안봉근 비서관이, 점심식사 후엔 정호성 비서관이 대면 보고했다”고 적고, 뒷부분에서는 “그날 관저 출입은 가글을 가져온 간호장교(신보라 대위)와 미용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모순된 설명을 적기도 했다.
이진성 재판관은 “답변서가 부실하다. 박 대통령의 당일 행적을 밝혀달라는 취지인데 답변서가 그에 못 미친다”며 “피청구인의 기억을 살려서 세월호 침몰에 대한 최초 인지 시점이 언제인지, 오전 9시 좀 넘어서부터 TV로 보도되기 시작했는데 피청구인은 TV를 통해서 확인하지 않았는지 등을 다시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재차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