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8년 만에 월 판매 1만대 벽이 무너졌다.
일부 완성차업체의 독점 구도로 선택의 폭이 줄고, 경차만의 가격 경쟁력도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1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국내 경차 판매량은 9536대로 집계됐다.
경차의 한 달 판매대수가 1만 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09년 8월(9492대) 이후 8년여 만에 처음이다. 경차 시장의 '암흑기'는 올 들어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올해 최고 판매량은 지난 3월 1만2618대로, 지난해 한 해 동안 최저 판매량이었던 1월(1만1211대)과 비슷한 수준이다.
완성차 업체가 연말 대폭 할인을 진행한 직후인 1월이 자동차 업계의 비수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경차 시장이 얼마나 위축됐는지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실제 국내 경차 시장은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은 이후 지난해 17만3008대까지 쪼그라들었다.
현 추세대로라면 올 한 해 총 판매량은 13만 여대로 사상 최저치는 물론, 4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경차는 친환경차를 제외하고는 정부가 혜택을 주는 유일한 차종이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50% 할인받을 수 있고,
경차 유류세 환급 제도로 1세대 당 1000㏄ 미만의 경차 1대만 소유한 경우 휘발유·경유는 ℓ당 250원, 부탄은 ㎏당 275원의 환급을 받을 수 있다. 경차가 몰락한 원인에 대해 소비자들은 경차답지 않은 가격을 첫 번째로 꼽는다.
바로 윗급, 심지어는 두 단계나 높은 차급과 맞먹는 과도한 가격 책정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올해 경차 판매 1위를 기록 중인 기아차 레이의 가격은 945만원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4단 변속기(125만원)와 동승석 에어백(20만원)을 추가하면 차량가격은 1090만원이다. 하지만 사실 이 모델은 적재공간을 필요로 하는 법인이나 자영업자를 위해 뒷좌석을 개조한 차라 일반 소비자가 거들떠 볼만한 제품이 아니다. 주력 모델인 1.0 T-GDi의 가격은 1454만~1544만원으로 책정됐고, 후방카메라 등을 포함한 스마트 내비게이션(75만원)과
일부 선택사양을 더 추가하면 차량 가격은 최대 1714만원까지 치솟는다.
1.0 가솔린 모델은 시작가가 950만원이지만, 4단 자동변속기(125만원)만 얹어도 1075만원이 된다. 선루프나, 내비게이션의 추가는 아예 불가능하다.
60만원을 들여 추가할 수 있는 옵션은 리모컨 키와 파워윈도우 등의 수준이 그친다. 결국 몇단계 위의 제품으로 눈을 돌린다. 기아차가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처럼 소비자가 선호도 높은 차종 1위가 1.0 가솔린 프레스티지라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1400만원에 달하는 기본 가격에 온갖 추가 사용을 더하면 차량 가격은 1610만원이다.
바로 윗급인 K3의 시작가 1545만원(자동변속기 기준)을 웃도는 수준이다.
터보 모델 구매를 염두 중이라면 100여만원을 더 얹어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 스토닉과도 저울질이 가능하다. 모닝의 유일한 대항마로 여겨지는 한국지엠의 스파크도 마찬가지다.
수동변속기 차량은 999만원에 판매 중이지만, 자동변속기를 얹으면 차량 가격은 1200만원대로 올라간다.
동급최초로 적용했다는 전방충돌 경고시스템과 사각지대 경고시스템 등까지 적용한 최고급 제품의 가격은 1559만원이다. 물론 후방카메라를 포함한 마이링크(50만원)와 톨게이트 자동결제 시스템과 열선 스티어링휠 등 일부 편의사양(45만원)을 더하면 1654만원에 달한다.
같은 브랜드에서 판매 중인 아베오(1410만원)은 물론, 크루즈(1690만원)와 트랙스(1695만원)까지 넘볼 수 있는 금액이다.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는 점 역시 시장 위축 요인이다. 현재 국내에 시판 중인 승용 경차는 기아차 모닝과 레이, 한국지엠 스파크 밖에 없다.
이 중 가장 최근 나온 경차는 2011년 출시한 레이다. 그만큼 완성차 업체가 수익이 딱히 나지 않는 이 시장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르노삼성자동차가 수입판매 중인 전기차 트위지 역시 일단 경차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앞으로 자동차 분류기준이 더욱 세분화하면 언제 경차 대열에서 이탈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